제목 루터와 칼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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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분당두레교회 작성일  2012-01-29 18:39:16
루터와 칼빈

1. 칼빈은 루터를 개혁자로서 존경하였고 그의 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첫째, 칼빈 자신이 이 사실을 분명히 말했다.
“전과 같이 이제 다시, 복음의 순결성을 우리 시대에 부흥시킨 수고와 사역으로 인해 우리는 그를 그리스도의 탁월한 사도로 간주한다고 강력히 선언한다.”
“루터의 이러한 업적에 어떠한 오류가 발견된다 할지라도, 그것을 덮어두기를 원한다. 진실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훌륭한 재능에 경의와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을 위해서 악을 묵인하려는 것, 그것은 모든 선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는 루터와 츠빙글리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들 선량한 사람들은 누군가가 츠빙글리의 이론을 조금이라도 손상시킨다면, 복음 그 자체가 파괴될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하여 아무도 츠빙글리에게 어떤 공격도 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나란히 비교해 본다면, 루터가 그를 얼마나 능가하는 지를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둘째, 이런 사실은 저명한 칼빈 연구가들도 지적하는 바이다.
a) 방델 교수는 이 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다.

“칼빈은 항상 루터에 대한 열렬한 존경심을 품고 있었는데, 그의 저서들을 일찍부터 탐독하였으며 그것에 의해 루터에게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독일어를 몰랐으므로 라틴어로 쓰여 지거나 번역된 글들에 만족하여야 만 하였다. 루터의 영향은 너무나 자명하여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칼빈의 글 속에서 루터의 문구로부터 빌어온 구절들이나 완전한 논지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사상가가 다른 사상가로부터 받은 영향은 반드시 인용문이나 표절 물에 의해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칼빈에 대한 루터의 영향은 다소 막연한 감은 없진 않지만 명백히 존재한다. 그것은 이 문제를 다룬 대부분의 신학자들에 의해 계속 인정되어 온 결론이다.”
“루터의 영향은 1536년의 「강요」의 구상에서 이미 외적으로 명백하게 나타났는데, 그것은 루터의 「소요리문답」의 순서를 취한 것이다. 또한 근본적으로 「기독교 강요」는 루터의 사상을 자주 도입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십계명과 사도신경의 첫 조항(또는 셋째조항역시 역시)의 해설에 뚜렸이 나타나 있다.”

“문자적인 확증 없이 칼빈이 실제로 읽었던 루터의 저서가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판별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의심할 바 없이, 그는 「성만찬의 신실한 시행에 관한 지침서」(Enchridion piarum precationum)란 제목으로 여러 번 재판된 작은 기도서(Betbüchlein)의 라틴어 판인 「소요리문답」을 탐독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칼빈이 최소한 1539년 이래로 「대요리문답」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그는 「그리스도의 자유에 관한 논문」(Treatise on Christian Liberty), 「교회의 바벨론 유수」(특히 그릇된 성찬에 관한 장), 「노예의지론」(1525), 1527년에 라틴어로 번역 출간된 광신자들에 반박하는 「그리스도의 피와 살에 관한 설교」(Sermon on the body and the blood of the Christ against the Enthusiasts), 또 1519년에 출판되어 1524년에 번역된 「그리스도인의 살로된 신성한 성찬에 관한 설교」(Sermon on the venerable, sacrament of the body of Christ)와 무엇보다도 먼저, 부처에 의하여 번역된 설교집(Postille)을 인용하였다.”

b) Herman J. Selderhuis 역시 루터를 칼빈의 스승으로 본다.
“칼빈의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에 대한 강조는 그의 스승이며 동료인 루터와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인격적인 십자가의 신학으로 이끈다."
c) Randal C. Zachman도 루터의 칼빈에 대한 영향은 의심할 수 없다고 본다.
루터와 칼빈의 상호관계성을 말하는 어떤 신학자도 두 사람의 신학의 전적 일치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칼빈 신학의 형성에 루터의 영향이 대단히 컸음을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