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루터와 칼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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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분당두레교회 작성일  2012-02-05 17:49:10

루터와 칼빈 (2)

2. 오직 성경으로만,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은혜로만 등의 종교개혁의 근본원리들은 루터와 칼빈의 공통의 강조점들이다.

루터와 칼빈은 이 종교개혁의 근본원리들을 강조하는데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사람 사이의 차이점을 발견 하는데로 나아가기 전에, 이 두 사람이 공통으로 강조했던 내용을 좀 더 정확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 루터, 칼빈 연구는 본질을 놓치는 연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이 말한 이 원리들은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진정한 의미가 파악되기가 어렵다.

루터와 칼빈은 이런 신앙의 핵심 진리들을 16세기라는 상황 속에서 특히 로마 카톨릭 신학과 관계해서 그리고 인문주의나 재세례파 그리고 중세 후기 사상과 경건들과의 관계에서 변호하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핵심진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고통스런 연구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많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이런 수고를 하지 않고 이런 원리들을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그들이 본래 말하고자 하는 점들을 바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실을 지금 살아 있는 독일 신학자들 중 독일 신학계에, 나아가 세계 신학계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융겔(E. Jüngel) 교수처럼 잘 지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1998년 10월 31일에 루터교와 로마교가 <칭의론에 관한 공동선언문>을 내 놓았을 때, 그리고 이 선언문에서 칭의의 조항을 서로 타협하고 조정하여 새롭게 만들었을 때, 그는 이 조항은 루터의 본래 의도를 왜곡시킨 것이라고 지적하고,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서의 죄인의 칭의에 대한 복음」라는 책을 써서 루터가 이 조항을 통해 본래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루터의 칭의론은 즉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특히 스콜라 신학과 중세 후기 사상들과의 관계에서 설명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원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중세신학과의 관계를 지으면서 루터를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칼빈의 이해 역시 더 분명하게 되어 질 수 있다.

칭의론의 경우만 보아도, 방델이 지적하는 것처럼 칼빈은 루터의 칭의론을 좀 더 충실하게 확립하고 한층 강력하게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 칼빈과 루터는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차이점들을 자세히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차이는 아마도 성만찬에 관한 두 사람 사이의 입장 차이일 것이다.

이 차이로 인한 논쟁이 심화되면서 개혁파 교회와 루터파 교회가 생길 정도가 되었으니 중요한 차이 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차이도 실제로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고 그들 자신들의 저술들을 살펴보면 루터와 칼빈 두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하여 가졌던 공통점이 너무 많았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칼빈이 1541년에 기술한「성만찬 소고」를 볼 때 다섯 차례 루터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긍정적인 인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 카톨릭의 화체설에 대한 비판점들을 살펴보고, 두 사람이 가지는 공통점에 대하여 살펴보고, 그들이 어떤 부분에서 서로 분명히 다르게 애기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할 때 - 주로 칼빈의 경우 - 왜 그런 비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그들 두 사람을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차이가 성찬의 본질에 관계된 문제만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적, 신학적 상황에도 영향을 받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무엇보다 그들 자신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썼던 글들을 상호 비교함을 통하여 좀 더 자세히 연구해야 할 것이다.

비단 성찬에 대한 문제뿐만이 아니다. 다른 차이점들도, 예컨대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 문화에 대한 입장등과 같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차이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내용들에 대하여서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원문을 가지고 검토해 나가다 보면 우리는 그런 정체 없이 떠돌아다니는, 즉 세심한 연구 없이 말해진 애기들이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연구는 진실을 밝힌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종교개혁의 공동의 유산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십자가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이 두 사람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이 두 사람을 비교해 볼 때, 이 두 사람은 매우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