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루터와 칼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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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분당두레교회 작성일  2012-02-19 13:25:53
루터와 칼빈 (최종)


5. 루터의 십자가 신학과 칼빈의 십자가 신학의 비교

첫째, 루터는 십자가 신학을 자신의 신학의 중심으로 삼는다.

그의 초기신학 뿐만 아니라 후기신학에서도 십자가는 항상 중심에 서 있다. 여기에 비해 칼빈 신학의 중심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이다.

그 분이 아버지이심으로 우리는 그 분께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둘째, 루터는 십자가를 항상 칭의론과의 관계에서 설명한다.

루터는 칭의론을 설명한 다음 바로 이어서 십자가를 다룬다.

이는 그가 십자가를 칭의를 이루어가는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은 십자가를 지는 삶을 말한 다음 칭의론을 본격적으로 취급한다. 그에게 있어 십자가는 칭의론적인 것이기 보다 성화론적이다.


셋째, 루터는 십자가를 신(神)중심적으로 이해한다.

하나님께서 신자를 구원하시는 방식으로 이해한다.

신자가 반드시 지고 가야할 십자가라고 말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짊어지워 지고가게 하는 십자가이다. 이 점에서 이 십자가는 수동적 십자가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수동적이란 말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강제로 지우는 것이니까 짊어지고 간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 속에서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고 따라간다는 뜻이다. 칼빈에게도 이 신 중심적 성격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자기 부정적 관점이 강조됨으로 인하여 이 성격이 부각되지 못하고 묻히고 있다.


넷째, 루터는 고난에 대하여 말할 때 외부적 환난이나 핍박을 분명히 말하지만 신자가 이런 고난 속에서 당하는 내적 마음의 고통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즉 그의 고난 이해의 핵심은 영적 고난이다 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시편에 대한 두 번째 강의(1519-21)의 시편 6편에 대한 주석은 대표적이다. 그러나 칼빈에게 있어서는 외적으로 받는 고통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한 괴로움과 고통이 강조되고 있다. 고난의 내적 영적 측면은 일찍이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여기며 멀리한다.


다섯째, 그는 십자가를 말할 때 당시 교회를 주도했던 여러 종류의 영광의 신학을 비판한다.

칼빈의 십자가 이해 부분에서는 주적은 철학자들이다.

그러나 루터에게 있어서는 영광의 신학을 가르치는 당시 교회의 신학자들이다. 1518년의 하이델베르그 토론이 대표적이다. “영광의 신학자는 악을 선이라 말하고 선을 악이라 말한다. 그러나 십자가의 신학자는 모든 것을 제대로 말한다 (21항)” 그는 십자가를 말할 때 신자들이 당하는 고난과 그의 가치를 모르는 영광의 신학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여섯째, 고난이 영광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므로 고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고난에 참여하는 고난으로 이해될 수 있다.

1514-15의 로마서주석에서 “환난 중에도 기뻐하나니 ...” 칼빈 신학에 있어서 고난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참고 견뎌야 할 측면이 강조되지 고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기쁨으로 지고 가는 고난의 측면이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일곱째, 루터에게 있어 십자가가, 목양적 측면은 항상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당시의 영광의 신학자들을 비판하는 측면에서 말해졌다면, 칼빈은 자신에게 주어진 교회와 양무리를 목회하는 교회의 목회자로서 훈육과 훈련의 차원에서 십자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덟째, 칼빈에게 있어서는 “십자가를 지는 것: 자기 부정의 일부”라고 말한다면, 루터에게 있어서는 “십자가를 지우는 것: 하나님의 축복의 일부”라고 말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