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숨김(Verborgenheit)과 드러냄(Offenbar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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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분당두레교회 작성일  2012-03-11 15:48:22
숨김(Verborgenheit)과 드러냄(Offenbarung)

김용주 목사



우리 한국 사회를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문제들 중 하나가 숨김과 드러냄의 문제이다. 사람을 너무 안 만나면 외롭고 그래서 만나기 시작하면 조절이 안되어 생활에 손해가 오고, 이로 인하여 겪는 내부적 고통이 의외로 크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히 한국에 살면서 겪는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이다. 인간은 타락한 후 죄로 인하여 숨김과 드러냄 사이에 갈등을 겪는 존재로 떨어졌다. 이 갈등을 없애려 하지만 없앨 수 없다. 신앙을 가진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이 갈등을 조율하여 드러낼 때 드러내고 숨길 때 숨길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에서 시작하는 것을 잠시 보류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면서 이 문제를 풀어 보자.


1. 드러냄과 숨김은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 피조물들에게 숨기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어느 인간도 자신을 볼 수 없게 철저히 자신을 숨기신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 45:15)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 섬기는 모든 우상 숭배자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없다. 그 분이 본래 형태가 없는 무(無) 혹은 공허(空虛)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숨기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숨기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스스로를 우리에게 숨기시는가?
그 이유는 우리의 타락한 성품 때문이다. 이 타락으로 인하여, 만일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다면, 인간은 그 하나님의 영광의 자태 앞에 굴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느낀 대로 자신이 생각한 대로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은 본래의 자신의 모습대신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져 조롱을 받으시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하나님을 본 그대로 섬길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숨기실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다는 말인가? 하나님을 볼 수 없다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가? 설령 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바르게 섬길 수 있겠는가?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다.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미 답변하셨다. 어떻게 답변하셨는가?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자신이 어떤 분 이신지를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려주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려주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고 오신 분으로 말씀하셨다. 여기에 대하여 가장 분명히 알려주는 대목이 제자 빌립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시다. 빌립은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고 말씀하시며 빌립을 책망하신다. 그러면서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요 14:10)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수를 봄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숨기시고 드러내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보내셨는지를 분명히 알고 계셨다. 그가 이 땅에 보냄을 받은 것은 오직 자신을 나타내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으셨다. 그는 무리들이 그가 행하는 표적과 말씀을 듣고 자신을 왕으로 삼으로 할 때 그들에게 물러나시어 한적한 곳으로 자신을 숨기셨다. 아무도 올 수 없는 곳으로 그리고 오직 하나님과 만 함께 계실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자신을 숨기셨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칭찬과 위로와 영광을 구하셨다. 주님은 그 은밀한 곳에서 “내가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였사오니 당신도 나를 영광스럽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오직 하나님께 만 영광을 구하며 사람들로부터 받는 영광을 거절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다 나타내시기까지는 예수님은 다시 자신을 드러내셨다. 사람들 앞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이를 통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즉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는 철저히 자신을 숨기시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자신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숨김과 드러냄의 절정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숨으셨다. 그는 자신을 음부에까지 숨기시면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하늘에까지 드러나도록 하셨다. 바로 이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드러냄과 숨김의 갈등을 어떻게 풀 수 있는지 답을 얻을 수 있다.


3.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숨겨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우리 자신을 철저히 숨겨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할 때는 우리는 과감하게 사람들에게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 반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광을 받을 자리는 피해야 한다. 우리를 칭찬하며 우리에게 영광을 돌릴 때 우리는 자신을 숨겨야 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 앞에 엎드리어 하나님으로부터만 칭찬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할 자리는 우리가 불리해도 그 자리로 나가야 한다. 하나님을 비방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변호하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려 준 대가로 사람들이 우리에게 영광을 돌리려 할 때 우리는 다시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돌리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때로는 모욕과 멸시가 따른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제자들이 져야할 십자가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십자가 아래 숨김으로서 하나님을 높이고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숨길 때 하나님은 더 높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러내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숨겨야 한다. 하루하루 살면서 우리는 매 시간 숨김과 드러냄의 결정 앞에 서게 된다. 우리는 원죄가 있는 죄인이어서 항상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 자신을 드러내고 나의 유익을 위하여 내 자신을 숨기려 하는 유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순간 하나님의 영광은 가리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자. 그리고 또다시 드러냄과 숨김의 갈등의 포로로 떨어짐을 알자.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 자신을 숨기고 드러낼 때만 우리는 숨김과 드러냄의 갈등을 극복하고 자유롭게 드러내고 자유롭게 숨기며 살아가는 새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