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두 도시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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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분당두레교회 작성일  2014-11-01 16:54:54
두 도시의 향기 – 김용주 목사 -

독일에 있을 때 바이마르와 아이제나흐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두 도시가 풍기는 향기가 달랐다.

바이마르(Weimar)는 고층 건물은 거의 없고 대개 네모반듯한 집들로 이어져 있다. 구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에 큰 동상이 서 있는데, 이른바 바이마르 고전주의(Weimar Klassik) 시대를 열었던 두 문인 괴테와 쉴러를 기념하여 세운 동상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옛 도시는 온통 괴테와 쉴러 냄새로 가득 차 있다. 동상이 있는 곳에서 조금 만 걸어가면 쉴러가 살았던 집이 나오고, 또 조금 만 내려가면 광장이 나오는데 그 옆에 괴테가 살았던 집을 볼 수 있다. 건물 하나 하나가 괴테와 쉴러와 관계되어 있다. 본래 이 도시는 아주 작은 도시였다. 하지만 바이마르 영주였던 Karl August가 1775년에 괴테를 초청하면서 그리고 1799년 쉴러가 들어오면서 문예 부흥이 일어나고 이른바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 피었다.

고전주의는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와 감정 중심의 낭만주의와 질풍노도 운동을 지양한 운동이다. 고전주의의 이상은 새로운 인간성을 만들어내는 인간갱신운동이다. 중세의 교권주의로부터 탈피한 인간, 모든 것을 권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할 줄 아는 인간, 그러면서도 감정에 완전히 휩싸일 정도가 되지는 않을 정도로 감정을 소중히 하는 인간, 또 인간의 선천적 도덕성과 후천적 문화의 힘을 인정할 줄 아는 인간, 또 자연을 알고 자연과 조화하며 사는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운동이다. 바로 이 고전적인 인간 냄새를 괴테와 쉴러가 여기서 퍼뜨린 것이다. 여기에서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절”을 완성하고 그의 대작 파우스트를 쉴러의 격려를 받으면서 썼다고 한다. 쉴러 역시 “빌헬름 텔”을 비롯한 여러 문학 작품과 드라마를 써서 직접 무대에 올려 상연을 했다. 이들이 일으켰던 고전주의 운동은 1786년부터 1832년까지 밖에 지속되지를 못했다. 그러나 그 때 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그들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래서 이 냄새를 맡고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도시를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제 나흐(Eisenach)는 바이마르에서 기차로 30분 정도면 가면 나온다. 기차가 도착하면 바로 그 곳에 ‘바하의 탄생도시 Einsenach’라고 쓰여 있다. 개천에서 용이 된 바하(Johann Sebastian Bach)가 태어났던 곳이다. 그의 가족들이 적어도 300년 이상이나 살아 왔던 곳이고 그가 태어나 세례를 받고 그가 라틴어 학교를 다녔던 곳이다. 옛 도시로 들어가면 얼마 안 되어 쉽게 바하의 집을 찾을 수 있다. 집에 들어가 보니 바하가 쓰던 옛날 악기를 전시해 둔 방이 있다. 집에서 나오면 바하의 동상이 있고 또 조금 만 나오면 바하가 세례 받았던 교회가 나온다. 이 도시는 곳곳에서 바하 냄새를 물신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 도시는 또 한 사람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머무르면서 교회에서 성가를 부르고 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우던 곳이다. 그는 이 도시를 너무 사랑해서 어려울 때마다 찾아 와서 쉬고 갔던 도시이기도 하다. 그는 이 도시를 “나의 사랑하는 도시"라고 불렀다고 한다. 잊을 수 없는 사건은 루터가 1521년 보름스 국회에서 파문 선고를 당하고 목숨이 위태로울 때 이 곳을 찾았을 때이다. 그는 당시 작센의 영주였던 프리드리히의 도움으로 이 도시 산꼭대기에 있는 바트부르그 성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이 성에서 그는 기사 복장으로 둔갑하고 이름도 에르그로 바꾸어 10개월 동안을 숨어서 살았다. 바로 이 기간 동안 그는 신약 성경을 원문으로부터 독일어로 번역을 하는 가장 위대한 일을 했다. 이런 역사로 인하여 지금도 이 도시에 가면 루터 동상을 비롯해 루터가 살던 집이 있고 곳곳에 루터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해놓았다. 결국 이 도시에는 바하와 루터의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두 도시를 지나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이 두 도시는 공통점이 있었다. 별로 크지 않은 도시들이다. 그리고 이 네 사람이 잠시 동안만 머물렀던 도시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남긴 위대한 작품들(magna opera)이 수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오게 하고 있다. 이 두 도시의 차이점도 발견했다. 이 두 도시가 풍기는 냄새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한 도시는 오직 인간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러나 한 도시는 하나님 냄새를 발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 도시를 동시에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오직 성경으로만 참 인간으로 교육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바이마르의 고전주의 냄새는 별로 좋은 냄새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이제나흐가 좋은 냄새가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 도시가 풍기는 냄새는 과거의 죽은 유물이 품어내는 냄새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을 이 세계의 주인공으로 세우고 인간을 신처럼 만들려는 사람들에게는 바이마르의 향기는 살리는 향기요 아이제나흐의 향기는 죽이는 향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이 세계의 주인공으로 세우고 인간의 구원은 오직 예수 안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이제나흐의 향기는 살리는 향기요 바이마르의 향기는 죽이는 향기가 될 것이다.

결코 같지 않은 향이다. 그 향을 품은 사람들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풍기는 냄새도 다른 것이다. 괴테나 쉴러는 ‘인간이 만든 향’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이 날리는 향기 역시 인간 냄새가 난 것이다. 그러나 루터와 바하는 ‘하나님이 만들어준 향’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 냄새가 나는 것이다. 사람은 무슨 생각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풍기는 냄새가 달라지는 것이다. 같은 종교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믿는 신이 어떤 신이냐에 따라 그들이 풍기는 냄새도 틀리다. 같은 기독교인들이라 하더라도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냄새가 다르다. 괴테나 쉴러를 이복동생이나 혹은 이웃사촌 정도로 이해하는 기독교인들이 풍기는 냄새와 오직 예수만을 통한 구원을 외치는 기독교인들이 풍기는 냄새가 같을 수 없다. 종교 다원주의와 모든 인간 중심 사상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내가 가진 향이 어떤 향인지 다시 한 번 자문 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