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충군애국 사상
 이메일
 첨부
 작성자  분당두레교회 작성일  2014-11-01 16:56:00
충군애국 사상 – 김용주 목사 -

교회에서 대표 기도하시는 분들의 기도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대통령과 나라를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다. 왜 유독 우리나라 교회만이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일까? 언제부터 이런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을까? 다음의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1895년 10월 8일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백성들에게는 고종 왕에게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했다. 더 이상 일본을 신뢰할 수 없던 고종은 선교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선교사들은 고종의 침실 옆에 있는 왕실도서관에서 번갈아 가면서 불침번을 보았다. 위기 가운데 맺어진 왕실과 선교사들의 관계는 기왕에 갖고 있던 선교사들에 대한 신뢰를 더욱 견고히 만들었고, 선교사들은 이와 같은 위기가 미래를 보장하는 하나님의 간섭이라고 생각했다. 선교사들은 고종 가족을 미국 유학에 알선하는 등 계속하여 고종을 도왔고, 고종은 보답으로 언더우드가 발행하는 그리스도 신문을 친히 구독하고 대신들에게도 구독하게 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충군애국 사상이 기독교인들 사이에 한층 고조되었고 교회는 겨레의 아픔에 깊숙이 동참하기 시작하였다. 1897년에 전후 ⌜조선그리스도인회보⌟는 앞장서서 “만수성절”, “대군주 페하 탄일”, “대황제 탄일”등의 사설을 발표하고 축하행사를 거행하여 충군애국정신을 고취시켜 나갔다. 당시 한국교인들 사이에는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에 대한 충성은 물론 반드시 나라에 대한 충성심도 가져야 한다는 보편적 인식이 있었다. (박용규, 한국 교회사 I, 791-793)"

나라가 강대국들의 침략으로 인하여 풍전등화의 위기에 내 몰렸을 때 나라의 왕이 피난처를 간절히 찾을 때, 선교사들과 한국교회 성도들은 왕과 나라를 지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교회는 충군애국 교회의 특징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때는 국가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었고 왕 역시 사면초가의 위기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충군애국적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신군부가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 했을 때 충군애국적 기도는 말도 안 되는 기도였다. 이 때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일부의 목사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열어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신군부의 쿠데타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시켜준 것은 명백히 잘못한 일이다.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충군애국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