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에바브라디도와 바울, 그리고 살리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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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희전 작성일  2015-08-16 04:00:54
에바브라디도와 바울, 그리고 살리에르



에바브라디도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였습니다.

성경은 에바브라디도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립보서 4 장 18 절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빌립보서 2 장 30 절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빌립보서 2 장 25 절


그는 바울에게 헌금을 전달하고, 투옥중인 그의 필요를 돌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를 자신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군사된 자라고 고백합니다.

성경은 그가 어떤 직분을 받았다거나 특별한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가 섬긴 “바울”은 역사를 통하여 줄곧 주목(spotlight)을 받았지만

그는 그저 바울과 교회의 심부름을 하다가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목을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그는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함께 수고하고, 함께 그리스도의 군사인데도 말입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지도력의 은사”를 받았고

에바브라디도는 직분도 없는 “평신도”로서 “섬기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바브라디도를 ‘한 수 아래의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를 ‘형제’로 보고 ‘함께 군사된 자’로 보고 있습니다.

바울이 받은 그 풍부한 은사(gift)는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계급화로, 자기의(自己義)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에바브라디도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낼 수 있는 독자적인 사역이 없었습니다.

그가 한 일은 바울의 필요를 돌보고, 교회와 그의 심부름을 한 것 뿐 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 아니고

그저 사람일 뿐인 ‘바울’의 필요를 위해 궂은 일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궂은 일’을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바울처럼 위대한 사도가 되고 싶은 영적인 야망이 없었을까요 ?

가 언제까지 바울의 뒤치닥거리를 해야 하나 갈등하지는 않았을까요 ?



반대로 바울이 자신의 은사와 직분을 명예와 권세로 착각하여

에바브라디도를 함부로 대했다면,

그랬다면 그와 바울의 관계는 어땠을까요 ?

아마도 그들의 관계는 그렇고 그런 ..... 였을 것입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1장 22절


에브라디도는 바울이 진리를 순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십자가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고난 받는 주님의 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지를

두 눈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십자가를 실천하는 삶이

에바브라디도의 영혼을 깨뜻하게 하였습니다.



감히 바울의 한 알의 밀알되는 삶을 보면서

권력과 인기를 꿈꾸는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지

한없이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이와 똑같은 일이 바울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

종교적 야망으로 불타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 말씀하셨을 때

그의 심령 안에

끊는 통곡이 있지 않았을까요........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게서

진리를 따르는 삶을 보았고

이것은 결국 더 이상 그들이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삶을 포기하도록 했습니다.



몇 해 전에 제 신앙을 갖기 시작한 조카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삼촌 ! 참된 영적 지도자를 어떻게 알아 볼 수 있지요 ?”

“선한 목자는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단다.”

이렇게 대답하긴 했지만

성경 말씀을 인용한 것 뿐

성령의 확증을 통한 답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The Early Christians" 열 다섯 번 째 글을 작성하면서 다음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이 있었습니다.

참된 지도자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하여

타인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그 영혼도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인도하는 자“ 라고



바울에게 그리스도가 그랬고

에바브로디도에게 바울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이제 살리에르의 이야기를 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를 질투한 궁정 음악가 인

그는 신부에게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If He did not want me to praise Him with music,'' the mad old Salieri says to an uncomprehending priest, ''why did He give me the desire?''

“만약 그 분이(하나님)이 내가 음악으로 그 분을 찬양하기를 원하시지 않는다면

왜 그 분은 (나에게 찬양하고 싶은) 갈망을 주셨나요 ?“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찬양을 받기를 원하시지 않는 다고 오해 했을까요 ?


모차르트의 천상의 소리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의 음악은 음악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진실로 자신의 찬양을 받기를 원하셨다면

자신으로 하여금 최소한 모짜르트 정도의 음악을 만들게 해주셔야 했다는 불만 떄문이지요.

리고 그는 신을 버렸다고 합니다.....



그는 과연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

아니면 하나님을 섬기는 자신을 찬양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능력이 만든 것은

그와 살리에르의 단절이었고

살리에르의 영혼의 타락이었습니다.


바울의 십자가를 따르는 삶이 만든 것은

에바르도디도와의 한 운명됨이었고

에바브로디도의 영혼의 깨끗케 됨이었습니다.


십자가에는

모든 우월감과 열등감

모든 상대적인 구분을 녹여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한 연합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요 ?

무엇을 갈망하고 있을까요 ?

천재적인 능력인가요 ? .......십자가의 능력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