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초대 교회 이야기 19 - 참 교회, 거짓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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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희전 작성일  2015-09-12 03:37:41
The early christians 열 아홉 번째입니다.

초대 교회 이야기 18을 쓰고, 거의 열흘 만에 초대 교회 이야기 19를 씁니다.
번역하는 내용과 관련된 시대적 배경이 너무 급격하고,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쉽게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신학자들이 읽는 글도 아니고
평신도 수준에서 교회의 원형을 알고 싶어 시작한 일이기에
너무 깊고 전문적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진실을 전달하기에 충분할 만큼은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몇 번을 썼다가 지웠습니다.
올리려고 써 놓고도 마음이 평안이 없어 올리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는 것이 육체노동만큼이나
저의 영혼을 소진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힘겨운 과정을 거치고
하나님께서 진리 혹은 진실의 항구로
저를 안내하실 때는
위로와 함께
다시금 하나님 나라를 위한 투혼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바쁜 세상
이런 장황한 글을 붙잡고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분이 얼마나 되실까 생각되기도 하지만
진리를 찾는 길이 그렇게 자판기 커피 나오듯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긴 글도 참을성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누군가에게 저와 같은 절실함이 찾아 왔을 때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사람이 여기 또 있네” 하며
읽어 볼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들의 죽음 이후의 시대는
두 부류의 교회들로 나뉘어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교회는 다음에 인용하는 교회를 말합니다.

『 키프리안이라는 카르타고의 주교가 있었다. 그는 자유롭게 “보편교회(the Catholic

Church)” 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그 “보편교회(the Catholic Church)” 밖에는 구원이 없

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그의 시대에 이미 “가톨릭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바로 그가 선

언한 이 “보편교회(the Catholic Church)”가 지금의 천주교 혹은 로마가톨릭교회의 원형

이다.] 콘스탄틴 대제는 단지 이 “"Catholic" 이라는 이름을 끌어 쓴 것뿐이며 그것에 순

응하지 않는 모든 교회들을 배제시켰다.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노바티안

과 그들의 동조자들에 대하여 글을 쓰면서 키프리안은 그들이 ”보편 교회에 반대하는 사악

한 부류“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노바티안(주후 3세기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

던 자들)과 교류하는 자들은 “보편교회(the Catholic Church)”를 분열시키는 사람들이라

고 말했다. 또한 그들이 어머니 교회를 저버리는 불경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다시 보편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 “자신의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고, 다른 교회 안에는 구원이 없다.” 라고 말하는 교회가 바로 “보편교회(the Catholic Church)” 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교회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교회일수록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복음은 다른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 보다 혹은 자신들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삶보다 우월하다는 상대적인 의로 가득차 있습니다. 마치 다른 교회는 자신들 보다 열등하고, 뭔가 한 가지 부족한 것처럼 여깁니다. 이것은 완전히 바리새적인 태도이며, 교회가 권력화로 가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동기입니다.)

키프리안이 주장하는 이 교회는 우리가 천주교 혹은 가톨릭 교회라고 알고 있는 교회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교회도 나중에 분열되기도 하지만(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상당 기간 하나의 교회로 존재합니다. 이 교회의 특성에 대해서는 지난 번에 올린 ‘초대 교회에서 제도적인 교회로’라는 글에서 올렸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그 교회의 특성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다음은 가톨릭교회의 전신이 되는 이 “보편교회(the Catholic Church)”의 특징입니다.

1. 계급화 / 권력화 / 세속화

2. 안주 혹은 안정 지향적(하나님 나라의 임재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없음)

3. 성숙 보다는 성장 지향적-세례 지원자들에 대한 느슨한 신앙 검증
→ 보다 진실한 신자가 아니라 보다 많은 신자를 지향함

4.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인격적인 교감 , 믿음의 형제들 간의 사랑에 기초한 연합이 아닌
의식(ritual)과 기계적인 절차를 통해 하나님께 다가가려고 함으로 하나님을 만난 간증
과 이야기가 없는 신앙인을 만들어 냄

5. 자신들만이 진실한 교회라고 생각하며 전혀 그리스도을 닮지 않은 방법으로 자신들의 교
회에 속하지 아니한 많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그들의 삶의 진실에 대한 기
록들을 왜곡하거나 없애버림

6. 제국주의적인 선교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복음의 중심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이 아니라 자신들의 '종교’를 전함

7. 외적인 화려함을 추구함

8. 성령님과 말씀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인도를 구하기보다는 성직에 기초한 인간적 권력
이 이 교회를 이끌어감 (초대 교회로 돌아가려는 열망이 없음)

그러나 진실한 신자들은 이렇게 변질되어가는 교회에 함께 물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곳 저곳에서, 박해를 받고 소멸되면 또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부활하며 교회의 원형인 사도 시대의 교회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앞에서 전술한 “보편교회(the Catholic Church)”의 끊임없는 핍박을 받았고, 이단으로 정죄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순례하는 교회사’에 나오는 이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 보편 교회가 지배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보편 교회가 많은 양의 문헌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반면에 보편 교회에 속하지 않은 교회들의 문헌은 말소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편 교회에 속하지 않은 이들에 관한 기록은 그들을 비난하는 문서들 속에서 이삭줍기 하듯 조금씩 찾아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사실은 예수의 죽음 이후 첫 3 세기 동안 하나의 단결된 보편 교회와 비교적 덜 중요한 많은 이단 종파가 있었다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서로 배타적인 수많은 그룹들이 각자 특성을 가지며 존재했었다. 』

『교회가 증가함에 따라 초기의 열정은 시들해졌으며, 세상과 그 패턴을 따라가는 세속성도 증가했다. 때때로 이러한 움직임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없지는 않았다. 보편 교회 안에서도 개혁을 목표로 하는 그룹들이 생겨났다.』

→ 보편 교회가 등장하면서 그 보편 교회에 동조하지 않는 신앙의 부류는 이단으로 정죄되는 과정을 겪은 것 같습니다. 즉 보편 교회가 ‘정통’이 되고 그렇지 않은 교회들은 ‘이단’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통’과 ‘이단’이라는 말을 쓰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구분하시긴 해도, 단지 자신들의 신앙의 색깔과 다르다고 해서 ‘정통’과 ‘이단’의 구분하시지는 않은 듯합니다. 실제로 보편 교회에 속하지 않은 많은 부류들은 보편 교회보다 더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더 정결한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존 교회에 대한 개혁의 움직임들이 이단으로 정죄 받은 듯합니다.

『 오리겐은 교회를 그들 자신의 삶에서 영원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보았다. 이들은 진실하고 영적인 교회를 형성했는데, 반드시 사람들이 “교회”라고 부르는 것과 일치하지는 않았다. 』

→ 이미 그 당시에도 복음이 살아 있는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가 있어서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무지가 존재했었음을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Demetrius는 감히 평신도인 오리겐이 주교들을 교훈한다고 분개하여 그를 검열하고는 알렉산드리아로 소환해서 결국은 그를 추방해버렸다.(비록 오리겐이 순종하는 자세를 취했을 지라도)』

→ 계급화되기 시작한 교회는 평신도와 성직자 간의 구별이 심해졌음을 보여 주는 문장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할 수 있다는 초대 교회의 정신이 이제는 특정한 성직자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일종의 권위주의가 등장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 “보편교회(the Catholic Church)”와 어울릴 수 없어서 박해받거나 떨어져 나오거나 소멸되기까지 했던 그러나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끊임없이 부활한,



세력화 되지 않은 작지만 개혁 지향적인 교회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같습니다.

1. 초대 교회로 돌아가고자 하는 투혼이 있었다.

2. 성장 보다는 성결/ 성숙 지향적이었다.

3. 의식(ritual), 기계적 절차를 통한 종교적 구원 보다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
한 공동체적 구원을 지향했다. (공동체적 구원이란 개인의 구원이 공동체(타인)에 대한
헌신으로 이어지는 구원을 말합니다.)

4. 인간의 권력이 아닌 성령님과 말씀이 지도자 적인 역할을 하는 ,
즉 『'생명’이 왕노 릇 』 하게 하려고 했던 교회였다.

5. “보편교회(the Catholic Church)”같은 성직 시스템이 없었고, 다만 은사와 그에 기초
한 직분자들 간의 인격적이 기능적인 사랑의 연합을 통한 교회됨이 있었다.

6.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

7. 세례 지원자들에 대한 진지하고, 실질적인 검증이 있었다.

8. 외적인 화려함 보다는 내용있는 단순함을 특징으로 하며, 세상과 동화되기를 거부했다.

9. 그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많이 왜곡되거나 소멸되었다.

10.기독교라는 종교가 아닌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소박한 선교를 하였다.


번역하는 내용 중에 ‘몬타니즘’이 등장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음에는 순수한 개혁의 움직임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이단으로 변질된 운동입니다. 이 운동의 진실성 여부를 알기 위해 전에 읽었던 “순례하는 교회”라는 책을 다시 참조하게 되었고, 그 책을 다시 읽으면서 풀 수 없었던 난제들이 풀렸기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F.F BRUCE라는 저명한 복음주의 신학자가 추천사를 쓰고, E.H. Broadbent라는 선교사이자 작가인 분이 지은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도 출판사에서 책이 출판되어 있습니다.

몬타니스트.
그들에 대해서 살펴보면 볼수록
“개혁”를 바라는 현재의 그리스도인들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몬타니스트 자체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서 개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의 염원이 당시 교회 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그 과정을 통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는 것이 저의 의도입니다.)

다음은 “순례하는 교회”의 몬타니스트 관련 부분 진술입니다.

『 몬타니스트들은 사도 시대의 원시적인 신앙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회중들을 모으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특별히 교회 안에서 성령님이 일하실 여지

를 드리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으기를 희망했다. 영적인 계시들과 관련해서 과장되거나

자부심이 지나친 부분이 있을 지라도, 그들은 (점점 노곤해져 가는) 제도화되어가는 교회로

부터의 개혁을 가르치고 실천했다. 몬타니스트들은 일반적으로 기존 교회 안에서 발전된 조

직을 인정하고 받아 들였고, 기존교회(보편 교회)와 교통하려고 노력했다. 기존교회(보편

교회)는 가능한 한 많은 신자들을 끌어 모으려고 했지만 몬타니스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자 하는 자들에게 정말로 거듭난 분명한 삶의 증거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기존교회(보편 교

회)는 주교들로 하여금 다른 교회들에게 지배력(control)을 행사하도록 의무화 했지만, 몬

타니스트들은 이것에 저항했다. 교회를 지도하는 것은 성령님의 고유한 권한이므로 성령님

이 일하심에 교회가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 한 마디로 몬타니스트들은 사도 시대 신앙의 원형을 복원하려고 했던 사람들로 보입니

다.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 그렇데 말씀하시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 인격적

인 관계가 있는 생동감있는 신앙을 추구했던 사람들로 보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인격적

인 관계를 잃어버리고, 그저 하나의 종교로서 제도화 되어가던 기존 교회에 내에서 개혁에

대한 갈망을 표출했던 그룹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기존 교회와 마찰을 빚고 나중에

는 예배당을 완전히 파괴당하거나 집을 빼앗기는 등 박해를 당하게 됩니다.


『 점증하는 교회의 세속성을 보면서, 그리고 교회 지도층 사이에 영적인 실력 보다는 학식이 강조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신자들은 (그들과는 달리) 성령의 권능과 내주하심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는 몬타니스트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사도 시대의 가르침과 실천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

→그리스도의 “생명”은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의 지도층 중 어떤 사람들은 “생명” 보다는 “학식”이 앞섰던 것처럼 보입니다. 학문없는 범인(凡人) 이었던 사도 베드로 안에 역사했던 그 능력을 사모했던 많은 사람들이 몬타니스트들에게 이끌렸던 것처럼 보입니다. 몬타니스트들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갈망과 사도 시대의 삶을 실천하는 것 외에도 기존의 교회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던 듯이 보입니다.

끝으로 부탁드립니다. 몬타니즘과 노바티안 파 등에 대해서 “보편교회(the Catholic

Church)”에 의한 ‘이단’으로의 정죄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

은 초대 교회로 돌아가고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기존 교회와 어떤 갈등을 겪었으며

지금이라도 어떻게 초대 교회의 혼을 되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글이므로 이단 시비로

글의 본질을 흐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정말 그런 논의가 초대 교회의 본래적인 믿

음의 회복을 위한 열정에 찬물을 끼얹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들에 대한 자료를 피상적으로

살펴보면 한 쪽 주장으로 치우치지만, 심층적으로 살펴 볼 때는 최종적 판단을 마지막 날까

지 유보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정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저에게

언제든지 직접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이 초대 교회 이야기가 저 만의 고민이 아니라 우리

들의 고민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찾고자 하면 할수록 조심해야 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

과 소통 없는 정죄 그리고 예의없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읽어 보고, 찾아보고, 기도하며, 힘들어하며 쓰는 글입니다.

기도하면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기도하면서 글을 올리게 해 달라고 기도해주시고
혹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참 교회와 거짓 교회.
참 교인과 거짓 교인.

무엇이 거짓인가를
누가 거짓인가를 판단하는데 삶을 소비하기 보다는

나는 정녕 참인가를
시험하고 확증하는 길이 생명의 길임을 믿습니다.

비록 지금까지 내가 '거짓’이었을 지라도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에 함께 달릴 수 있다면
‘참’으로 태어날 수 있음을 믿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린도후서 13:5)

번역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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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과 원시적인 초대 교회가 사라진 후)

더 나아가서, 그들의(사도들의) 독특한 영적인 전투의 투혼(鬪魂)은 (몬타누스라는 지도자를 따르는) 몬타니즘 부흥운동 속에서 재현되었다.

프리지아라는 곳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기독교 전역에 영향을 끼쳤는데 특별히 소아시아 , 가울 지역(지금의 북이탈리아·프랑스·벨기에 등을 포함함), 그리고 아프리카에 영향을 끼쳤다.
한 동안 그 운동은 두아디라 지역에서처럼 온 기독교계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쳤다.

몇몇 교회 지도자들은 그들의 회중과 함께 몬타니스트들과 합류했고,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 속에 거기서 함께 살며 서로를 돌보았다.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렬한 열망은 몬타니스트들의 특징이었다. 유명한 교부인 터툴리안도 초기에는 이 운동에 참여했고, 현대에는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도 이 운동의 지실성을 신뢰했다.)

심지어는 로마의 제도적인 교회도 이 운동의 힘과 영성을 보존하기 하려고 시도했고, 그 운동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편지까지 작성했으나 실제로 보내지는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초기 기독교의 종말론에 대한 역사적인 위기에 맞닥뜨리게 된다.

몬타니즘은 다가올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열망의 최후의 강렬한 폭발이었다.
즉 몬타니스트 예언자들은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모든 세상의 구조를 바꾸어 주시기를 기다렸다.

이러한 확신과 영웅적인 믿음은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성령님의 자유로운 역사(役事)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나타났으며, 성령님은 새로운 예언을 통하여 교회의 하나됨을 이끌어가시려했다.
원래 이 운동은 기독교계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킬 의도가 없었고, 오히려 그것은 교회 내부의 자생적인 움직임이었다.

무엇보다도 우선, 그 운동은 사도들이 가졌던 바로 그 믿음을 복원하기를 원했다.

초기 사도들과 예언자들처럼, 몬타니즘의 새로운 예언은 구약의 율법서와 예언서, 그리고 더욱 분명한 모습을 갖추어 가던 신약 또 모든 이단과 어둠의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성장해가는 믿음의 법도(기독 신앙)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특별히 바울 서신 속에서) 말씀의 의미가 분명하게 감지되지 않을 때는 그들은 성령을 통하여 그 말씀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에 로마에 있는 제도적인 교회는 이 성령님의 갱신 운동을 반대했다.
(“보편교회(the Catholic Church)”가 이 운동을 반대한 것은 이것이 성령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몬타니스트들의 운동은 이단으로 변질되었다.

점점 경직되고, 조직화된 예언자 집단이 되어가면서, 그 운동은 편협하고, 율법적이며, 필요 이상으로 도덕적이기만 한 성향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상호 작용이 만든 몬타니스트들의 제도적 교회로부터의 분리는 초대 교회 역사의 한 전환점이 되었다.

주님의 재림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체되는 사이 어떻게 기독 신앙을 보존하고 전파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되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금방 오실 것 같은 주님이 재림이 늦어지면서 그들이 당시까지 유지했던 신앙의 태도를 계속 가져가야 할지 고민했던 듯 보입니다,)

이제 막 출현하게 된 제도적인 교회는 가능한 한 다양한 계층에 기독 신앙을 전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것이 다시 오실 창조주 하나님의 재림의 새벽빛이 희미한 이단적 황혼에 의해 어두워지는 결과를 만들지라도
(제도적인 교회는 ‘그리스도인됨’의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함으써 쉽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을 열어 놓았고, 이를 통해 이단 사상이 교회 안으로 유입된 것을 말함. 점점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이 희석되기 시작함)

반대로 (제도적인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온) 분파들(sects)은 그 빛을 흐리지 않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선명하고 날카로운 영적 전투를 계속하려고 했다. 비록 그들의 편협함과 분리주의로 인해 세상의 빛이 되지는 못했을 지라도.

이러한 전환기에, 제도화된 교회의 역사에 걸린 저주가 터졌다.

그것은 바로 제도화돤 교회와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분파 사이에 서로를 사랑 없이 오해(허위진술:misrepresentation)하는 것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면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태도를 잃어버린 것을 의미함)

그것은 사랑 안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그리스도의 목적을 광적인 불법과 증오 그리고 분열로 바꾸어 버렸다.

막 태어난 제도적인 교회는 결정적으로 진리의 열매를 맺을 능력이 없었고, 그것은 곧 분파(sect)를 만들어 내었다.

반면에 제도적 교회에 반발한 분파(sect)는 그리스도의 몸의 크기를 키울 수 있는 포용력 있는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이름으로 하는(Christian)” 이단 사냥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완전히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것은 제도적인 교회에 의한 분파들(sects) 대한 박해를 의미한다, 제도적인 교회는 이단이라고 생각되는 분파들의 예배당을 완전히 파괴하거나 그들의 집을 빼앗고 몰아내었다.)

왜 몬타니스트들이 제도적인 교회속의 점증하는 세속성을 불신했는 지는 분명하다.

반면에 자유롭게 역사하는 성령님에 대항하는 제도적인 교회의 검열과 불신도 동일하게 중요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명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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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more, the militancy of this unique spiritual battle broke out at the end of our period in the revival movement, often called “"Montanism,”" after one of its leaders.

Originating in Phrygia, this movement affected most of the important regions of contemporary Christendom, especially Asia Minor, Gaul, and Africa.

For a time, it dominated entire churches, like that of Thyatira.


Some church leaders moved into the country with their congregations, where they
lived together and cared for each other, filled with the expectation of the Kingdom.

Even Rome, attempting to preserve the power and spirit of this movement for the institutional church, composed a letter of recognition, but never sent it.

Here we are confronted with the historically necessary crisis of early Christian eschatology.


Montanism was the last mighty eruption of an intense expectation of God’'s future; the Montanist prophets eagerly awaited him to intervene and transform all conditions and relationships.

This conviction and heroic faith showed itself again as they tried to regain the God-given freedom of the Spirit, which, as promised in John’'s Gospel, was to guide the unity of the church through the new prophecy.

Originally this movement had no intention of severing itself from the body of Christendom.

On the contrary, it was an internal movement of the church.

Above all, the movement wanted the same, original faith of the apostles.

Like the first apostles and prophets, the new prophecy of Montanism wanted to defend the ancient scripture of the law and the prophets, the New Testament (which was in process of being more clearly defined), and the gradually expanding rule of faith against all attacks and perversions.


Only when their meaning seemed obscure (especially in the Pauline letters) did the new prophecy try to clarify them through the Spirit.

At the last moment, however, the institutional church at Rome opposed this renewal of the Spirit.

And at the same time the Montanist movement degenerated into a sect.

As an increasingly formally organized group of prophets, it became narrow, legalistic, and moralistic beyond measure.

This reciprocal effect made the separation a turning point in the history of early Christianity.

The question now arose how to preserve and promote Christianity in this world, since the renewal expected from God was so long in coming.

The emerging institutional church concluded that it was her task to carry as much light as possible into all strata of humanity, even if this meant that the daylight of the Creator and his coming day was darkened by the dimness of cultic twilight.

Conversely, the emerging sects tried to carry on the clear, sharp fight of the first Christians without dimming the light, even if, in their effort, the light of the world was hidden under the bushel of narrowness and separatism.


At this turn of events, the curse hanging over the history of the organized church erupted: the curse of mutual, loveless misrepresentation.

It changed Christ’'s purpose to unite people in love into fanatical injustice, hate, and division.

The emerging institutional church was unable to bear the spirit of decisive truth, which brought about a sect.

The sect, on the other hand, was unable to bear the spirit of diffusive love which leads to the formation of a large church institution.

This marked the beginning of heresy-hunting, so characteristically “"Christian,”" yet so completely un-Christlike.

It is clear why the Montanist mistrusted the growing worldliness in the institutional church:

on the other hand, the censure and mistrust of the institutional church against the free-working Spirit have historical causes which are just as import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