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초대 교회 이야기 20 - 영지 주의(적 신앙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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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희전 작성일  2015-09-20 21:54:31
The early christians 스무 번째입니다.

오늘 번역하는 본문에는 영지주의가 등장합니다.
유대주의 이외에 초대 교회가 싸워야 할 가장 큰 이단 세력이었던 영지주의가 등장합니다.


영지주의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니 영지 주의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쓴 글들이 많이 있었습니

다. 그것도 최근에 쓰여 지고 있는....정통 기독교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어 박해를 받았

던 순수한 신앙인양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영지 주의 신앙의 대표적인 문서라고 할 수 있

는 “도마복음”도 읽어 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이름을 차용하여 영적인 지식 혹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혼

합 사상입니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에 기초한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깨달

음을 통한 구원을 추구하는 철학 사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영 되신 성령 하나님은
결코 복음의 진리와 인간 자신이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를
같은 위치에 놓을 수 없습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죄인 된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깨달음은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이사야 6:5)


누구든 진리 되신 하나님을 보고서는

자신에 대하여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은 깨달음을 통하여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여지조차 없는

가능성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점차 진리로부터 멀어져서
이제는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목소리들이
저마다 예수의 이름으로 진리를 부르짖고 있는 상황 속에서
참 진리 되신 예수의 음성을 어떻게 분간해낼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요한복음 7 장 17 절이 떠올랐습니다.

『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If anyone chooses to do God's will, he will find out whether my teaching comes from God or whether I speak on my own. --NIV』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자는
어떤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 요한복음10:26~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 마태복음 12 장 29 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십자가의 사랑에 인격적으로 굴복하며 거듭난 자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주하십니다.

그 분은 이 세상 그 어떤 세력을 대하여서도 가장 ‘강한 자’되십니다.

그러므로 영지주의라는 혼잡한 영의 세력도
거듭난 신자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을 결박하여 자기 권세 아래에 둘 수 없습니다.

거듭난 신자 안에 진리의 영되신 성령님은
오히려 잘못된 영지주의 영을 분간해내며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교훈이 아님을 밝혀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거짓된 이단의 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의 생명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예수의 생명은 거짓된 영을 밝혀내는 탐지기 같은 것입니다.
(미성숙한 생명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영지주의 등 이단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 그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도 중요하지

만 나중에 그들이 틀렸다는 것이 성경을 통해 증명이 되어도, 그들은 여전히 말도 안되는

성경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과 자기 신념을 붙들 것입니다. 그때는 이것이 지성의 싸움이 아

니라 영적인 권세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모든 어둠의 권세

를 이기신 부활하신 예수의 생명의 내주가 필연적입니다.



모든 어둠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하신 예수 생명의 내주가 필수적임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에베소서6:13-17

영적 전투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구원의 투구(the helmet of salvation)”를 쓰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구원(거듭남)을 통해 내 안에 내주하시는 예수의 생명이 영적 전투의 필수 요소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
(Examine yourselves to see whether you are in the faith.....) (고린도후서 13:5)

“Examine”이라는 단어는 “주의 깊게, 철저하게 살펴 보다”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는가 ?


그 분은 하나의 인격적 존재이십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지금도 나의 성화를 위해서

내 안에서 나를 이끌어 가시는 역동적인 생명이십니다.



그 분이 내 안에 있어야지만 거짓의 영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영지주의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너무나 광범위하지만 하나씩 그 특징을 열거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예수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잘못된 신앙이다.

→ 영지 주의는 영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이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

리의 몸을 가지고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다. 예수의 육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드러나신 것처럼, 우리의 육신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표현된다면 우리의 육체는 선한 것일

수 있다.



2. 선택받은 자에게만 계시되는 신비한 지식으로 구원에 이르려 합니다.

→기독교의 구원의 방법은 오직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다. 그러나 영

지주의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특별한 ‘지식’ 혹은

‘깨달음’ 혹은 ‘사상’을 통해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성경을 인용하기

는 하지만 성경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자기들의 사상을 위하여 성경을 왜곡하거나 다른 사

상과 혼합시킨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지식과 깨달음을 통한 구원을

지향하는 하나이 사상적 흐름입니다.



3.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면서 실제로는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었
다.

→이들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적이 없는 자칭 ‘기독교인’들이다. 하나님을 인격적

으로 만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으며, 어

떻게 하님이 그들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이끄셨는지를 성경적 근거를 들어 간증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들만의 독특한 사랑 이야기(love story)가 있는 것이다.(거듭났지만 이

를 잘 간증하지 못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이 분들은 신앙과 인생의 여러 ‘선택’을 통해

서 자신들이 거듭났음을 증거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이것이 없다. 이들은 하나님을 만난

인격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없을뿐더러 엉뚱한 선택을 한다. 다만 자신들이 진리라고 생각하

는 어떤 주장이나 사상에 관한 자기 생각 혹은 신념만이 있을 뿐이다. 이들은 대부분은 성

경에 대해서 어설프게 알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문자요, 사상이지 말씀이신 하나님이 아니다. (요 1: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성경을 해석하지 못한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그 자체는 없

고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왜곡하는 생각체계, 신념만이 있을 뿐이다.

이들은 기독교를 하나의 철학 사상으로 전락시키려고 하였다. 이들은 ‘죄’로부터의 구원

이 아닌 ‘무지’로부터의 구원을 이야기하며,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아닌 지식을 통한 구

원을 이야기 한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in) 있지는 않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in) 있지는 않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in) 있지는 않다.

(저는 영지 주의자를 정죄하기 보다는 진리를 깨닫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들을 정죄함으로 제 마음 안에 ‘나는 옳다’는 우쭐함을 경계합니다.)



끝으로 영지주의는 아니더라도
영지주의적 성향으로 하는 신앙의 위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실은 이 말은 제가 제 자신에 하는 말입니다.)

무엇인가를

개념적으로

잘 정리하려는

정확하게 하려는

그래서 그것이 말이나 글로써 명쾌하게 정리될 때

자신의 신앙이 한 단계 성숙한 듯한 느낌을 갖는..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쓰는 글이 내가 아니고
내가 하는 말이 내가 아닐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글과 그 말에 비해서
나의 실재는 턱없이 형편없을 수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 나라’를 아무리 잘 정의해도
그 나라를 살아내는 일에는
완전히 ‘초짜’일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론과 실제의 이원화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의 이원화

믿는 것과 사는 것의 이원화

바라는 것과 실제 행동 사이의 이원화

교리적으로 완벽한 것과 형편없는 인격의 이원화



“살아냄”이 없이 “생각”속에 갇혀 있는 신앙.

이것이 영지 주의는 아니더라도 영지주의적 성향으로 하는 신앙인 것 같습니다.


『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

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

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

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

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
빌립보서 3 장 8 절 ~ 12 절



모든 것을 잃어버림

고난에 참여함

죽으심을 본 받음

안주하지 아니함

달려감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 바울은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의 삶을 돌아보아도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은

그 분을 살아내려는

몸부림을 통해서 온 것 같습니다.




가끔 단순하지만 힘든 노동을 하고 나면 머리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살아냄’은

'생각’속에 있는 지식의 노폐물을 쓸어버리는

거룩한 ‘노동’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 가

『..뜻이 ‘생각’ 속에서 이룬 것 같이 내 ‘육체’ 속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 가 될 때

진정한 영지주의의 극복이 있지 않을까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번역 글입니다.
(저는 영지주의만 많이 강조했지만 원문은 거짓된 가르침과 대항하기 위해서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 지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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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기 말엽에는 잘못된 예언의 영의 영향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해야할 충분한 이유가 생겼다.
그리스와 동양의 종교들, 이교도들의 신비주의가 철학 사상과 마술적인 의식이 교회 공동체 안으로 밀려들어 왔기 때문이다.

제도적인 교회는 이러한 영지주의의 물결 속에서 전례없는 위험과 유혹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울이 그의 생전에 극복해야 했던 유대교의 율법주의에 의해서 야기된 위기와도 비교될 수 있는 것이었다.

교회 안이나 몬타니스트 운동에 참여 했던 어떤 사람도 그런 사탄의 음모에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거짓된 지식의 영으로 말미암아 교회 공동체는 거의 파괴되었고, 마귀의 손아귀 안으로 빠져 들게 되었다.

초대 교회의 유명한 교부인 폴리캅은 그의 말년에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오 하나님, 저로 이런 일들을 겪도록 하기 위해 저를 살려 두셨나요?”

그는 영지주의 운동의 지도자를 사탄의 아들이라고 부르기 까지 했다.

그러나 결코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영지 주의자들의 “신비한 지식”안에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을 찾지 않았고, 심지어는 기독교의 또 다른 버전으로 그것을 인식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런 “가짜들”과의 사소한 접촉도 더 없이 위험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에베소에서 사도 요한은 영지 주의자 중 한 사람이 건물 안에 있을 때에 그 건물이 자기에게 무너져 덮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까지 한다.

이 책을 편찬하기 위한 문헌들을 수집하면서, 우리는 이교와 기독교의 영지 주의적 혼합 사상들을 배제했다. 비록 제도적인 교회가 그 당시 이후로 많은 이교적인 요소들을 제도적인 교회의 관행 속으로 받아들였을 지라도.


초대 교회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 기독교계는 두 가지 방식으로 위험한 내부적인 침략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는데 두 가지 방식을 사용했다.

첫째는 교리, 신조, 신약 성서를 문서화 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주교들의 힘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하나됨 속에 힘이 있다는 슬로건 아래에서, 제도적인 교회의 많은 부정적인 면이 있지만 이 두 가지 방식을 통하여 영적 무질서를 바로 잡고자 하신 하나님의 섭리도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이정표를 세웠던 창조적인 시대, 초대 교회의 (직접적인) 계시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성령의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문서화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었다는 의미)

신약 성경은 서기 140 년 ~ 200 년 사이에 그 주요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신약 성경은 성령님의 신뢰할 만한 선물로 심지어는 구약 보다 더 존중받기도 하였다.

정말로 그것은 기독교의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가념비적인 열매였다.

같은 시기에 사도 신경이 만들어졌고, 점차적으로 퍼져 가고 있던 신앙의 규칙이 문서로 명문화되었다.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그 시기에, 초기 그리스도인의 계시의 메시지는 모든 세대를 위하여 이 두 가지 문서 속에 기록되었다.

이 시점에서 성령님은 한번 더 영적인 전투에 쓰이는 무기(신약성서)를 담금질 하셨다. 지금까지도 그 무기들은 주로 거짓된 가르침을 물리치는 일에 사용된다. 특히 제도 교회 그 자체 안에 있는 거짓된 가르침들을 물리치기 위해.

그 안에는 요한 계시록, 사복음서, 사도행전, 사도들의 서신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성령님의 혁명적인 책이다. 다가올 미래(재림)에 대한 기대를 담은.

이 세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 책(신약성서)는 우리 시대의 바빌론 문화(세상 문화)를 지속적으로 정죄한다.

이 책의 독자들은 신약성서를 읽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는 이 책이 초기 그리스도인의 계시의 책처럼 신약 성경을 이해하는 일에 도움을 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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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end of the second century, there was every reason to look for protection from the influence of false prophetic spirits.

From Hellenistic and oriental religions, a stream of pagan mysticism flooded into the church communities, with philosophic speculations and the spell of magic rites.

The institutional church saw an hour of temptation and unprecedented peril in this wave of Gnosticism.

It could be compared only with the crisis caused by Jewish legalism, which Paul had overcome in his day.

Nobody in the church or in the Montanist movement wanted to be associated in any way with that satanic brew.

In the name of a false spirit of knowledge (recognized just in time), the church communities were all but destroyed and driven into the hands of demons.

It is reported that the aged Polycarp often exclaimed, “"Dear God, for what times hast thou preserved me, that I should endure these things!”.

He even went so far as to call a leader of the Gnostic movement the firstborn of Satan.

Under no circumstances would the Christians recognize anything “"Christian”" in this “"Gnosis”" or “"mysterious knowledge,”" not even as another version of Christianity.

The slightest contact with these counterfeiters was considered to be dangerous beyond measure.

In Ephesus John fled from a building, afraid it would fall in on him because one of those enemies of the truth was inside.
In collecting the texts for this book we have disregarded this gnostic mixture of paganism and Christianity, although it is a fact that the institutional church incorporated many pagan elements into her religious practices at that time and later.

At the end of the early Christian period, Christendom defended itself against the dangerous inroads mainly in two ways:


establishing the dogma and literary form of the creeds and New Testament writings, and consolidating the power of the bishops.

That point marked the end of the time of the earliest revelation, the creative time when God established new milestones in history.

The New Testament was given its primary form between the years A.D. 140 and A.D. 200.

From then on it was seen as the authoritative gift of the Spirit and even revered above the Old Testament.

Indeed it was a wonderful fruit of Christianity’'s creative epoch.

At the same time the apostolic creed became established, for now the rule of faith which was gradually expanded was set down in writing.


In that first period now irrevocably passed, the message of early Christian revelation was put on record for all times in these two documents.

Here the Spirit forged once more the keen weapons used in the time of battle, from now on to be used primarily against false teachings, not least against those in the institutional church itself.
Included were the Revelation of John, the gospels, the Acts of the Apostles and the apostolic letters.

This became the revolutionary book of the Spirit, tense with the expectation of the future.

Indeed, this book –- antagonistic to this age –- continues to condemn the Babylon of our time.

It is assumed that the reader of this collection has access to the New Testament.

We hope this book will contribute toward a clearer understanding of the New Testament as the book of early Christian reve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