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초대 교회 이야기 21 -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탑
 이메일 joyfield@naver.com
 첨부
 작성자  홍희전 작성일  2015-10-04 20:28:17
The early christians 스물 한 번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일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택하시고, 그에게 권위를 부여하시는 것 같다.

그 권위는
사람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임을 성경은 증거한다.
그리고 그 권위가 하나님께로 온 권위임을 증거하는 열매가 있음을 말한다.

모세에게 권위를 부여하실 때에도
아론 지파에게 제사장 직분을 부여하실 때에도
사도 바울에게 사도의 직분을 부여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기적이나 말씀을 통해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부여 받았음을 확증해주셨다.

우리 모두가 평등한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을
차별이 아니라
구별하여
권위를 주시는 것 같다.

아무도 그 권위를
먼저
스스로
노력을 통해
하나님께 졸라서 받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오늘 번역한 본문에 등장하는 주교(bishop)들은 사도의 직분을 스스로 취하였다.

『 주교들은 그들이 사도의 직위와 예언의 영을 계승한 합법적 후계자라고 선언했고, 성령님은 그들을 통해서만 일하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꾸며낸 이야기(myth)가 없었다면, 그들은 결코 지배권(우월적 지위)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하나님의 교회와 자유롭게 일하시는 성령님을 또 다른 실재가 대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주교들의 보이는 교회였다. 』

사도들이 죽고 권위의 공백이 생겼을 때
스스로 사도들의 권위를 청구한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예수님이 친히 임명하신 12 사도가 죽음으로
사도의 시대는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꾸며내어서 얻은
스스로 만들어낸 권위는

권력이 되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엄청난 죄를 짓는데 사용된다.

서기 500년 중반부터 1600 년대 초반까지
꾸며낸 사도직 계승을 근간으로 하는
가톨릭에 의해 순교를 당한 사람들의 숫자가 5 천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J. M. Carroll 이 지은 “피 흘린 발자취(The Trail of Blood)" )

사울 왕이 상황의 군박함 때문에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장이 드려야 할 제사를 자신이 드려버렸을 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신들은 너무 지나치오. 모든 백성이 다 거룩하오. 거룩하지 않은 백성은 없소.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들과도 함께 계시오. 그런데 당신들은 왜 스스로를 높여서 모든 백성 위에 있으려 하오?” 라고 말하며
모세에게 도전했을 때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하시지 전에
권위를 청구한 것 같다.

사실 그들이 구한 것은 권위가 아니라 권력이 아니었을까 ?

(그 댓가로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의 무리는 땅에 삼키우는 재앙을 입게 된다.)

마찬가지로
주교들에 의한 꾸며낸 사도권의 계승은
예수님을 전혀 닮지 않은
권력화된 종교를 만들어 내었다.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가장 영적인 일을 하면서도
타고난 권력의지를 포기 못하는
죄인중의 괴수.

그래서 십자가가 필요한 것 같다.

매 순간
부풀어 오르는 자아를 못 박을
십자가가.

내가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음으로 초래될 파괴와
내가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자라갈 생명 사이에......................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
누가복음 24 장 26절


진짜 영광은 맨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맨 아래에 있는 것 같다.

번역 글입니다.
-----------------------------------------------------------

그 시기를 위협하던 위험에 대한 또 하나의 보호 조치는 주교 직(職)을 통하여 교회를 하나의 조직으로 변형시키는 것이었다.

언제라도 (주님의 재림을 대비해) 짐을 쌀 준비를 하고, 영구적인 지상에서의 안착에 대한 어떤 생각도 없었던 초기 교회 공동체 속에서, (교회 간의) 분열의 위험은 사도들과 예언하는 자들과 교사들, 그리고 교회 지체들 사이를 오가는 형제애에 의해 극복되었었다.

(떨어져 있는 교회의 하나됨은 사도 바울이 이 교회 저 교회를 방문하며 교인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유모처럼 가르치며 본이 되는 삶을 살았듯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인격적인 연합으로 이루어졌음을 암시함)

그 후로는 (사도 시대 이후로는) 줄곧 주교들의 군주적 통치와 그들의 종교 회의를 통한 명령, 마지막으로는 교황의 우월적 지위가 보편 교회의 일치를 보장해 주었다.

(형제로서의 인격적 연합이 아닌 위계질서에 의한 계급적 연합이 앞에서 말한 사랑에 근거한 하나됨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의미)

주교들은 그들이 사도의 직위와 예언의 영을 계승한 합법적 후계자라고 선언했고, 성령님은 그들을 통해서만 일하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꾸며낸 이야기(myth)가 없었다면, 그들은 결코 지배권(우월적 지위)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하나님의 교회와 자유롭게 일하시는 성령님을 또 다른 실재가 대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주교들의 보이는 교회였다.

이레니우스는 그들의 주장에 따라 그런 주교들의 보이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사도들의 가르침
교회의 제도
주교들의 사도권 계승
성경의 완전한 전통

(그러나 이것은 주장에 불과했고 실제는 이와는 많이, 많이 달랐다.)

그 당시에 이미 성경에 대한 임의적 추가나 축소는 관용되어지지 않았다.

그는 모든 주교들이 계승적 안수(the successive laying on of hands) 통하여 사도들에 의하여 임명되었다고 간주했다.

Mopsuestia의 Theodore는 이런 사도와 예언하는 자들의 점진적인 사라짐과 상대적으로 막강해지는 주교들의 교회 통치권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초기 교회의 사도들의 죽음 이후에, 2 세대 사도들의 연약함은 기적을 행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무능력을 통해서 명백하게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들의 지도력을 포기하고, 그들의 권위의 일부를 후에 일정 지역의 주교들이 되었던 교회 감독자들에 넘겼다.

사실 주교들의 종교 회의의 힘은 몬타니스트 운동에 대한 싸움에서 처음 그 힘을 발휘했다.
(몬타니스트 운동은 “초대 교회 이야기 19”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초대 교회의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것은(몬타니스트 운동의 종교 회의를 통한 진압) 조직화된 교회가 저지른 궁극적 진리에 대한 범죄 행위로 여겨져 왔으며, 그 이후로는 주교제도에 의해 한 개인이 전체를 위한 법이 되어버렸다.

마치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탑처럼 주교 시스템의 최상층부를 차지하는 개인들이 교회 전체를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의 절정인, 교황 제도의 초기 징후는 이 책이 초기 교회 시대의 종말로 보는 180 년경에 이미 뚜렷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0 년경에 로마의 주교인 Victor가 로마의 부활절 풍습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모든 사람들을 교회로부터 추방함으로써 교회 조직 체계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

200 년경에 터툴리안은 모든 주교가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로마 교회의 교권의 강력해진 권력을 공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당시에 기독교계의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요한 공동체조차도 권력화되기 시작한 주교들의 보이는 교회의 주도적인 세력 앞에서 움츠러들게 되었다.

유대인 중심의 기독 공동체도 135 년 이후 계속 분파가 되었고 더 이상 어떤 영향력도 발휘할 수가 없었다.

터툴리안은 여전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장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므로 평화스런 교제와 “형제”의 이름과 서로 (성직의 여부와 관계없이) 존중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그는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위는 여전히 성령의 사람(the Spirit-bearers)에게 속했다고 보았다.

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위는 주교 중심의 교회법의 기초가 되었고(주교에게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위가 한정됨) 375 년경에는 이 사실이 일반화 되었다.
(그리스도가 아닌 주교들에게로 죄사함의 권한이 넘어감을 의미. 가톨릭 교회의 고해성사의 기원으로 보임)

처음에는 명목상이기만 했던 주교들의 힘은 점점 더 견고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초기 교회 시대가 끝나갈 무렵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대대적인 교회의식의
번식이 있었고,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새로운 경건이 자리 잡게 되었다.

---------------------------------------------------------------
Another protective measure against the dangers threatening at that
time was to transform the church into an organization through the bishops’' office.

In the first Christian communities (built with no thought of permanence and ready to break camp at any moment) the danger of disunity was overcome by the leadership in the Spirit given by the apostles, prophets, and teachers, and by the brotherly love ruling among all members of the church.

From now on, the organization of the bishop’'s monarchical rule, their synodal decrees, and finally the ascendancy of the Pope guaranteed the uniformity of the catholic world.

The bishops declared themselves the legitimate successors to the apostolate and prophetic Spirit; and the Spirit was restricted to their office.

Without this myth, their office could never have gained supremacy. The free working Spirit and the church of God as the body of the invisible one were replaced by a different reality: the visible church of the bishops.

Irenaeus defined this episcopal church according to its claims: the teaching of the apostles, the system of the church, the succession of bishops, and the perfect tradition of the holy Scriptures.

Already in his time no addition or curtailment of the Scriptures was tolerated. He regarded every bishop as appointed by the apostles through the successive laying on of hands.

Theodore of Mopsuestia described the gradual dying out of apostles
and prophets and the growing power of the bishops to govern the
church: after the death of the first apostles, the weakness of the second generation apostles was obvious through the weakening of their power to work miracles.

As a result, they voluntarily renounced their leadership, transferring part of their authority to church overseers, who became provincial bishops.

In fact, the power of the provincial synods first asserted itself in the fight against Montanism. This again brings us to the end of our time period.

This has been recognized as an outrage against ultimate truth committed by the organized church: from now on, by virtue of the episcopal constitution, one individual became law for the whole. Now those individual human parts constructed the whole, like a tower built by human hands.

The first symptoms of the institution of the papacy, the very apex of this structure, were already apparent in A.D. 180, our terminal date.

In A.D. 190, the Roman Bishop Victor laid the foundation for that ecclesiastical edifice by excluding from the church all those who refused to accept the Roman Easter practice. Around the year A.D. 200, Tertullian still regarded all apostolic sees as having equal status, whereas by A.D. 220 he felt compelled to attack the rising power of the papacy in the Bishop of Rome.

Even Johannine Asia Minor, which until then had been the very hub of the Christian world, now receded before the leading influence of the see of Peter. Jewish Christianity became sectarian and from A.D. 135 on could no longer exert any kind of influence.

Tertullian still considered all Christians as priests and sacrificers, and thus equally entitled to the fellowship of peace, to the name of “"brother,”" and to mutual hospitality.

As he saw it, the authority to forgive sins still belonged to the Spirit-bearers. And this authority to forgive sins became the basis for the ecclesiastical law of the bishops, a fact clearly recognizable as late as A.D. 375.

However external it seemed at first, the growing power of the bishops gained a firm foothold. At the close of our period an unbelievable proliferation of church ceremonies and an utterly different and new kind of piety took 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