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초대 교회 이야기 22 -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포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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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희전 작성일  2015-10-18 19:58:23
The early christians 스물 두 번째입니다.


초대 교회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서 멀어지게 되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종교 개혁을 거치기는 했지만

여전히 초대 교회 시절로 돌아가지는 못한 현대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를 하나님이 정죄하시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한 하나님은 사랑하시기는 하지만 타협하시지는 않은 하나님이 십니다.

때로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고문하시는 하나님이라고까지 여겨질 때도 있지만

사실은 그 모든 고난들이

넘치는 사랑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후사들에게

그에 걸맞는 품격을 갖추게 하기 위해 이 과정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대 교회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초대 교회와 다른 현재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것을 언급하는 것이 제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정죄(定罪)의 글로 읽히지 않기를

옳고 그름을 따지는 글로 읽히지 않기를

이 글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마음이 차가와지지 않기를

살리는 글이 되기를 기도하며 써나가고 있습니다.

『 .....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

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

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

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 고린도후서 7 장 9절 ~ 12절


초대 교회 이야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주님이 우리를 향하여 화난 얼굴을 하시고 계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위해

자신을 살피는 우리를 기뻐하시고, 응원하시리라 믿습니다.

때로 원형(原型)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혹은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멀어져 있는 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분은 당신의 원하시는 지점까지 우리를 이끄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번역하는 내용에 들어 있는 주제들입니다.


1 . 유아 세례가 신자의 세례(침례)를 대신함
:

‘신자의 세례(침례)’란 한 사람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인된 자신이 그리스도

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음에 넘겨져야 했으며,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으로 이제는 제

자로서의 삶과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를 선언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공

생애(公生涯)를 살기를 선언하는 중요한 의식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baptized into

Jesus Christ' 또는 ’baptized into death' 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baptized

into death(죽음 속으로 침례를 받다)'라는 표현은 침례라는 것은 예수 믿기 이전의 삶의

죽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baptized into Jesus Christ(예수 그리스도안으로 침례를 받

다)'라는 표현은 예수 안에서 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으로 들어가서 머리되신 그리스

도의 지체가 되었음을 알리는 즉, 죽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그를 머리로 하

는 다른 지체들과 한 몸, 한 운명이 되었음을 알리는 영광스러운 의식입니다.

한 마디로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 함께 살기를


개인으로서 살 던 삶을 끝내고 다른 형제, 자매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가기를 선

포하는 의식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그리스도가 자신을 떠나 있던 한 회개한 영혼을 자신의 몸속으로 불러들이

는 마치 집 나간 탕자를 다시 자신의 집안으로 불러들이는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한편 오늘 등장하는 유아 세례는

『유아 세례도 역시 기독교의 의식화(儀式化)가 시작된 바로 다음에 출현했다.』

종교 개혁자인 쯔빙글리와 콘라드 그레벨이라는 재세례파의 시조 사이에 갈등이 원인이 되

고 , 또한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 재침례교도들에 대한 박해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마태복음 3:9

『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요한 복음 8 :39~40

『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 로마서 2 : 28 ~ 29

위의 세 구절은 전부 유아 세례든 신자의 침례든


내가 나를 ‘그리스도인’라고 고백할 때는 ‘내용과 실재’가 있어야 함을 증거하고 있습

니다.


2. 교감과 기쁨이 없는 성찬식

Frank Viola 란 분이 쓴 “이교적 기독교(Pagan Christianity)” 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만찬을 기쁨과 축하의 분위기 속에서 즐겼다. 그것을 통해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승리와 그의 다시 오심을 선포했다. 그들은 다른 지체들과 함께 완전한 풍성한 한 끼 식사를 하였다. 』

『 주의 만찬은 교회 지체들 간의 일체감을 이루는 교감이 있는 이벤트 보다는 사제에 의해 집행되는 공허한 의식이 되었다. 』

초기 교인들의 성만찬이 정확히 어떠했는지 소소한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만찬을 하면서 기쁨을 누리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만찬의 핵심이었다는 것을 보

여 줍니다. 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을 서로 사랑하게 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 그것은

그들을 사랑하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즐거운 기억, ‘그가 우리

를 살리셨다’는 감격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 좋으신 주님을 중심으로 하는 수평적이고 자유롭고 기쁨이 넘치는 분위기 대신

이제는 사제의 의해 주재되는 엄숙하고 두렵기까지한 종교화된 의식이 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3.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물질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함

4. 신앙의 학식화

신앙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인데 점점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5. 타협적인 도덕률을 통한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의 양산

6. 제도적인 교회의 거룩함을 상실한 성공

오늘 번역한 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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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세례도 역시 기독교의 의식화(儀式化)가 시작된 바로 다음에 출현했다.


그것은 그 당시 까지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었던 완전히 몸을 물에 담그는 침례 의식을 밀어냈다.

유아 세례는 침례(세례)라는 성례와 그 신비에 대한 완전히 다른 개념의 의식이었다.

침례(세례)라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교회와 모든 교회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는 가치

있고, 의미심장한 용납됨을 의미하는 의식이었다.

170 년 경 Celsus는 그리스도인들이 제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러나 200 년경에는 탁자가 제단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성만찬은 이미 2 세기 중엽 이후 애찬식과 분리되었다.

(이 분리로 인하여 성만찬은 훨씬 경직된 모습을 가지게 된 듯합니다. 애찬식은 일종의 주 안에서 가지는 사랑의 회식이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원래 모든 신자들의 감사하는 마음과 실제적인 드림의 의식이었던 성만찬은 사제에 의해서

제공되는 봉헌으로 바뀌었다.

(떡과 포도주의 나눔을 통해 하나님과 교감하고 지체들과 교감하며 회복을 경험하는 것이 성만찬의 근본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저 사제에 의해 진행되는 교감 없는 형식으로 바뀌었다는 의미)

사제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는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임재와 교회 위에 임하

시는 성령의 강림하심을 대신하게 되었다. 성령님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Corpus

Christi.(그리스도의 몸)”로 간주되는 단지 떡과 포도주로 물질화되어버렸다.

3 세기 경, 초기 교회의 성찬식에서 카톨릭 교회의 미사에로의 변화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

었다. 신비적인 요소와 경이로울 만큼 매력적인 성례전을 포함하는 모든 미사 의식은 다양

한 이교도의 문화가 얼마나 심하게 제도 교회 속으로 흘러들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이교 문화와) 혼합된 교회는 속죄와 구원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해 (주님을 경험함으로부터 오는 만족이 아닌) 종교적인 의식으로부터 오는 만족을 제공

해 주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는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종교적인 욕구를 가진 심령들은 이제 교회의 영적이고 신비적으로 보이는 의식 속에서 영양

분을 얻게 되었다. 신자들의 종교적인 자기만족과 함께, 하나님의 임재는 사라지는 듯 했다.
(신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만족시킴으로써 , 하나님의 임재는 불필요한 듯 했다.)
이 생과 저 생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었다.


교회가 이런 방향으로 흐르는 데는 동양의 신비적인 사이비 종교와 그리스 철학 , 특히 플

라톤의 영향이 컸다. 180 년과 250 년 사이에 기독교는 학문과 문학 분야에서 중대한 힘을

가지게 되었고, 광범위하게 동시대의 문화와 철학을 흡수했다. 그러한 풍조가 지식인들에

게 환영을 받으면 받을수록, 초기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중심적인 메시지로부터 점점 멀어

지게 되었다. 3 세기가 되어서야 이레니우스, 히폴리투스 그리고 터툴리안 같은 사람들이

원래의 복음의 진리의 순수성을 회복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무식하다고, 교육받지 못하고, 단순하다고” 경멸적으로 불려 졌던 (상대적으로 천대받

던) 다른 신자들은 계속해서 “학식화”되어가는 기독교에 저항했지만 결과는 불가항력적이

었다. 결국 이 소박한 사람들조차도 낙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더 이상 초기 교회 시절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로부터 솟아났던 신앙적인 활력을 되찾기 어려웠다.

교회는 대중 전도를 위하여 타협적인 중산층 도덕률을 발전시켰다. 3 세기 이후로 “고해성

사”는 반복되는 죄에 대한 쉬운 용서를 제공하는 수단이 되었다.

제도적인 교회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당대의 사회와 구별되지 않고 오히려 점점 세상

을 닮아가면서 사람들은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으면서도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게 되었

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지라도 참된 기독교 신앙은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침내 이 책이 다루는 시대가 끝날 때쯤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포기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거룩한” 부르심과 “거룩한” 성례전, 거룩한 “성경”에 대해서

말하기는 했지만. 그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인들을 더 이상 “거룩한” 성도라고 부를 용기

를 가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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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ant baptism, too, can be traced to the time immediately following.
It supplanted the baptism of immersion, which had been so significant until then. It was a totally different concept of the “"sacrament”" of baptism and its mystery. Now baptism per se became a value, signifying acceptance into God’'s church and all her instruments of grace.
With infant baptism, Christian names came into use; whereas before the name “"Christian”" was simply used alongside the old pagan one.
As late as A.D. 170, Celsus noted that the Christians had no altars.
But by A.D. 200, the table was often called “"the altar.”"
The Lord’'s Supper had already been separated from the Lovemeal after the middle of the second century. Originally an offering of thankful hearts and tangible gifts from all believers, it changed (at the end of the century) into the oblation of the Mass offered by the priest.
Transubstantiation and the priest’'s reenactment of the body and blood sacrifice now took the place of Christ’'s presence and the descent of the Spirit upon the gathered church.
The Spirit and the crucified Christ were now materialized into the substance of wafer and wine as “"Corpus Christi.”"
In the third century, the shift from the earlier celebration of the Meal to the Catholic Mass was still in progress.92 The entire ritual of the Mass with all its mystery and wondrous sacraments shows more crassly than anything else how all the pagan religious currents flowed together in the institutional church.
As a result, the hybrid religion of the church supplied religious satisfaction for people’'s need for atonement and salvation.
The expectation of the future kingdom of God was now extinct. The religiously motivated ego now found nourishment in the church’'s otherworldly beliefs.
With all the believer’'s religious self-gratification, the deity threatened to vanish. There was an unbridgeable distance between this life and the life hereafter.
Together with Oriental mystery cults, it was Greek philosophy –- especially Plato’'s –- that exercised increasing influence in this direction.
Again in the years between A.D. 180 and A.D. 250, the Christianity of the churches became a great power in the field of learning and literature, extensively absorbing contemporary culture and philosophy.
To the same degree that it found favor with the educated, it departed from the central message of the kingdom of God. As late as the third century, men like Irenaeus, Hippolytus, and Tertullian tried in vain to reestablish the purity of the original Christian truth. Other believers, disdainfully called “"ignorant,”" “"uneducated,”" and “"simple-minded”" continued to protest the invasion of learning, but in vain.
Eventually even these simple people lost heart. They no longer had strength for the religious exertion which in early times had sprung from the expectation of God’'s future kingdom.
The church contented herself with developing a tolerable middle-class morality for the masses. Since the third century, the holy sacrament of penance provided comforting forgiveness again and again.
The institutional church achieved great success –- her growing identification with
the whole of contemporary society meant that by and large one had Christianity without being Christian, and that one did not have Christianity although one was called Christian.
Finally, by the end of the time span covered in this book, the church had “"ceased to be the virgin of Christ.”" Consequently, one spoke of a holy calling, holy sacraments, and holy Scriptures, for no one had the courage to call Christians “"saints”" any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