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초대 교회 이야기 23 - 대화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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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희전 작성일  2015-10-26 23:30:37
오늘로써 4 부분으로 이루어진 “The Early Christians"의 첫 부분인

“THE WITNESS OF THE EARLY CHURCH(초대 교회의 증언)”을 다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세 부분은 서로 연결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짧거나 혹은 긴 초대 교회 시기를 살았던 이들의 개인적인 증언이 주 내용을 이룹니다.)

정확함 보다는 은혜를 받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의역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문맥에 맞게 옮기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오늘 번역하는 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초대 교회의 원시적인 믿음의 증거는 오늘날 많은 교회들과 분파들 그리고 운동들간의

‘대화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진실로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단결

과 각성은 바로 초대 교회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초대 교회 이야기가 ‘대화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빗나갔는지를 생각하여 뉘우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
공동 번역 요한 계시록 2 : 5


번역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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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 시기에는 하나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성화(聖化)를 가능케 했지만, 그 사랑

은 점점 수도원적 금욕주의와 일반 대중의 교회 중심적 경건(종교적 경건)으로 바뀌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극단적으로 거부하거나 아니면 분별없이 수용하는 이중적인 양상을 보였다.

결국 세상은 제 갈 길로 갔고, 그러므로 이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교회는 그런 무기력한 사회 현상을 생기 있게 만들거나 혹은 이용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받

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몇몇 사람들은 금욕주의를 택했다. 그들의 눈에는 세상이 하나님께 점점 더 적대적이 되어

갔기 때문이다.

한편, 교회 안의 타협과 세속적인 지혜, 그리고 현실주의는 자연스럽게 보수적인 성격의 교

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서기 180 년은 교회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입지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그때부터 계속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와 공적인 영역에서 더 많은 힘과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

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초대 교회 교인들처럼 국가의 눈에 더 이상 범죄자가 아니었다.

(초기 교회 시절) 세례(침례) 교육 시 사용되었던 “열 두 사도의 가르침”의 한 부분인 산

상수훈은 삶과 생명의 길을 구분 짓는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격을 강조했다.
(무엇이 생명의 길이고, 무엇이 사망의 길인지를 명확히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런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점점 뒷자리로 밀려났다.

초대 교회 시절의 사랑의 공산주의는 완전히 포기되었다. 초대 교회 교부인 존 크리소스톰

은 서기 400년경 부터 사랑의 공산주의가 사라진 것으로 보았다.

사랑의 공산주의(사유 재산의 포기를 통한 나눔)를 교회가 포기했다는 것은 일견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이제는 그것을 실행하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 만큼 교회가 생명력을 상실했

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론적으로는 모두들 재산의 포기를 통한 사랑이 완전한 사랑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재

산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는 비기독교인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타락하게

되었다.

부와 사치가 만연되기 시작했고, 3 세기 이후로는 점점 더 많은 고위 공무원들과 고급 장

교들, 사치품 거래상, 부유한 도매상 그리고 대지주들이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다.

경제적 격차와 계급 간 차별을 거의 문제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곧 이제는 성직 중심의 교

회조차도 노예를 소유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부유해지기 시작했다.

교회의 재산이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터툴리안과 오리겐과 같은 교부들은 여전히 초기 교회 시절의 정신을 지키려고 했다.

그들은 사람을 처벌해야 하는 판사나 혹은 죽여야만 하는 군인 같은 직업은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반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거꾸로 상황은 변해서 314 년경에

는 도리어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근거하여 판사직이나 군인으로서의 신분을 포기하는 자들

은 교회로부터 출교를 당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양심적 선택은 전

혀 이해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증인된 삶속에 나타난 희생이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었다.

제도적인 교회는 로마인들의 재산관(觀)에 부분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고, 결혼에 대한 그

리스도인의 관점이 공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제도적인 교회는 로마 제국의 점진적인 쇠퇴와 새로운 성장에 기여하기도 했다.

동시에 교회 내의 수도원주의는 다시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믿음의 무정부주의를 이루

었다.(수도원의 주류 교회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초대 교회에서처럼, (수도원 내에서) 사유재산은 사랑의 공산주의로 말미암아 부정되었고,

노동이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았지만, 수도원 주의는 단순히 초대 교회의 영웅적인 믿음이

한 극단으로 치우쳐서 세상과 단절되어버린 때늦은 현상이었다.

수도원 운동은 조직화된 교회의 역사 속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그러나 조직화된 교회

의 생명은 (수도원 운동이 아닌) 성령의 능력이 권위와 자유함 가운데 나타났던 초기 교회

시절로부터만 영양분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을 재구성함으써, 제도적인 교회는 세속 역사 속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세속 권력이 되었다.

초기 교회 시절의 깨달음으로부터 많이 빗나가기는 했지만, 어떤 교회나 분파도 사랑이 신

앙의 정수이며, 믿음의 보물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 적은 없었다.

초대 교회 시대의 교부인 이레니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급진적인 기독교 분파도, 헌신적인 수도원 운동도, 제도화된 교회가 져야 할 큰 책임도

‘사랑’에 비하면 비본질적인 ‘그것’에 불과하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

은 형제 사랑의 자유로운 표현이며, 사랑은 지식보다도, 예언보다도, 다른 모든 좋은 은사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다. ” (약간 의역했습니다.^^)

이 책에서 초기 기독교에서 제도화된 교회에 이르기까지의 과도기의 증언들은 우리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불타는 사랑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많은 징표 속에서, 풍부하고 원시적인 초기 기독교의 정신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말을 한다.

조직화된 교회로 이어진 발전과 초기 기독교를 특징짓는 권능과 진리의 모든 순간들은 지금도 재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분명한 생명과 신앙의 길은 초대 교회 시대에 나타나신 하나님께 있다.

후대에 나타난 경직성과 많은 변형에도 불구하고, 이 생명과 신앙의 길은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살아 있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그 능력은 살아있는 진리의 샘으로부터 흘어 나오며, 결코 단지 외적인 전통의 모방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이 길을 찾기 위한 오직 한 가지 기준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드러내시는 성령님의 직접적이고, 넘쳐흐르는 증언이다.

이 책을 통해서 사도적이고, 예언적인 믿음의 증언이 우리를 향해 던져질 것이다.

초대 교회의 원시적인 증언은 매우 다양한 환경에 처해있는 우리를 하나됨과 순결함의 분명한 빛으로 이끌어 가야만 한다.


초대 교회의 원시적인 믿음의 증거는 오늘날 많은 교회들과 분파들 그리고 운동들간의 대화

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진실로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단결과 각성

은 바로 초대 교회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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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wer underlying sanctification –- love to God and to brothers –alive in the early times was now transformed into monastic asceticism and the church piety of the masses.

Christian ethics split into a dualistic way simultaneously rejecting and accepting the world.

The world, after all, followed its own laws and therefore was unchangeable in any case.

The church had to accept the status quo and attempt to leaven it and make use of it.

Some reacted to this by rejecting the world of the senses, (which in their eyes seemed more and more hostile to God), and embraced asceticism for its own sake.

On the other hand, compromise, worldly wisdom, and realism soon produced the familiar conservative character of church Christianity.

Once more, A.D. 180 marks the turning point in the social and political stance of the church.

From now on, Christians exerted increasing power and influence in politics and public affairs; they were no longer criminals in the eyes of the State like the first Christians.

As part of “"The Teaching of the Twelve Apostles”" used in baptismal instruction, the Sermon on the Mount stressed the unbridgeable gulf that divides the ways of death and life.

But now the Sermon on the Mount faded more and more into the background.

The early Christian ideal of a communism of love was not completely abandoned; John Chrysostom exemplified it as late as A.D. 400.

Yet incomprehensible as it was to give it up, it was still less conceivable for the church to put it into practice.

True, the theory of total love and surrender of all goods continued to be upheld, but it could not prevent Christian’'s attitude to property from becoming indistinguishable from that of non-Christians.

Wealth and luxury spread. From the third century on, more and more high-ranking civil servants and army officers, traders in luxury goods, wealthy wholesalers, and owners of large estates belonged to the churches.

Economic differences and class distinctions were now questioned so little that soon the episcopal church herself owned slaves and became richer and richer.

Only nominally did the church property belong to the poor.

Tertullian and Origen were still influenced by the early years.

They represented that the professions of judge (which is to punish) and soldier (which is to kill) were out of the question, but events gradually led (in A.D. 314) to the punishment of deserters by excommunication. No questions were asked about their consciences.

Yet the sacrifices inherent in the legacy of the early Christian witness were not made altogether in vain.

The institutional church achieved a partial softening of the rigid Roman concept of property and, still more important, public acceptance of the Christian concept of marriage.

The organized church contributed both to the gradual disintegration of the Roman empire and to its new growth.

At the same time, it was within the church that monasticism once again achieved the radical “"anarchism”" of faith responsible to God alone.

As in the first church, private property was overcome by the communism of love, and labor was given a new value.

Monasticism was simply a late phenomenon –- the heroism of early Christian faith grew one-sided and otherworldly.

The tremendous monastic movement was just one example of what is seen recurrently in the history of the organized church: her whole religious life can be nourished only from the earliest time when the power of the Spirit was revealed in authority and freedom.

By recasting Christianity, the institutional church became a recognized world power with a dominant role in world history.

In spite of all deviations from the early time of revelation, no church or sect in Christendom has ever completely forgotten that love remains “"the supreme sacrament of faith, the treasure of the Christian faith.

Bearing in mind the radicalism of sects, the narrowness of monastic exercises in devotion, and the vast responsibilities of the organized churches, Irenaeus was right in saying, “"It remains, as in the time now past, that the greatest is the free gift of brotherly love, which is more glorious than knowledge, more marvelous than prophecy, and more sublime than all other gifts of grace.

In this book the original testimonies of the transition period between earliest Christianity and the organized church speak to our times.

In the fire of first love, in the many signs of God at work, the rich, primitive force of the early Christian spirit speaks to us once again.

All the moments of power and truth characteristic of New Testament Christianity can be sensed here, including the beginnings of developments that later led to the organized churches.
Further, a clearly defined way of life and faith arises from the manifestation of God in early Christian times.

In spite of rigidity in later centuries and the changes which affected Christianity then, this way continues to be a living force today.

It comes from the wellspring of living truth and can never become a mere imitation of outward traditions.

There is only one criterion for this way: the direct, spontaneous testimony which the Spirit himself brings from God and from Christ.

It is the witness of faith, speaking to us from apostolic and prophetic experience through the pages of this book.

The original witness of the church must lead us all, though still in very different camps, into the unity and purity of the clear light.


The period of original revelation must be the point of departure for any dialogue between the many churches, sects and movements of our own day. The awakening and uniting of all who truly desire to follow Christ will be given at the source, and nowhere el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