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감사의 이유는 소유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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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분당두레교회 작성일  2017-11-17 15:48:05
가정예배
(2017.11.19)
■사 회 자 : 부모님 중에서
■예배준비 : 약속한 시간에 사회자의 인도로 시작합니다.
■찬 송 : 588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 (통일 307장) ■기 도 : 가족 중
■성경읽기 : 신명기 26:1~10
■말씀나눔 : 감사의 이유는 소유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습니다.

신명기 기록에 따르면, 가나안에 살게 된 히브리 사람이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 그 해의 첫 수확을 얻게 되었을 때, 그는 첫 열매를 가지고 정해진 장소에 가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때 제사장과 하나님 앞에서 두 가지 감사의 말을 하였습니다. 첫째는 내가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요(3), 둘째는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에 대한 고백입니다(5~9). 여기서 주목할 것은, 추수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사의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풍성한 소출을 얻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이 빠져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감사하게 되는 동기는 주로 얻은 소득과 밀접하게 연관되지 않던가요? 더구나 때가 추수의 계절이라면, 소산물을 얻었다는 사실이 가장 우선적인 감사의 이유가 되는 게 마땅할 텐데 말입니다.
석연찮은 대목, 바로 여기가 핵심입니다. 이는 사람이 드려야 할 감사의 이유가 소출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돌보시고 관심하시는 바는 우리의 소유(소산물)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입니다. 소유에는 많고 적음의 기준이 적용되지만, 생명에는 ‘살아 있음’과 ‘죽음’의 잣대가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소유가 많아지는 데에 있지 않고 생명이 풍성해지는 데에 있습니다. 생명력이 풍성하다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의식과 경외심으로 충만한 상태입니다. 이것이 감사의 이유가 소유에 있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있는 까닭입니다. 생명을 살게 하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선물입니다. 천체가 움직이고 계절이 바뀌며 대기와 물이 순환하면서 생명을 위한 터전을 제공합니다. 뭍과 바다가 식물을 내고 동물과 식물이 희생되어 먹혀 줌으로써 생명을 유지시킵니다. 이런 것들은 생명 존속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선물들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음을 의식함으로써, 생명에 필요한 선물들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선물들은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로 말미암은 것들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다시 맞는 추수감사절, 소출의 많고 적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는 결코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적다는 아쉬움’은 이미 진정으로 감사할 수 없는 상태이며, ‘많다는 만족감’은 자기 욕망에 도취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신비하고 고마운 사실은 ‘지금 여기에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가장 큰 일이며 놀라운 기적입니다.
기도 : 자비의 하나님,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합니다. 들판의 생명들이 당신의 은혜 속에 열매가 되어 주님께 감사하듯이, 우리도 당신의 은혜 가운데 충만히 살아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명성 목사∣팔미교회]